하늘 아래 가엾은 인간들_심업의 조각 <창천> 시리즈에 관하여

저우 웨진

    한국 조각가 심업의 조각전−<창천>시리즈가 2008년 7월 2일부터 16일까지 중국 베이징의 <챵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의 큐레이터로서 필자는 그의 조각창작의 전개과정을 지켜보았고, 이 글을 통해 그의 작품의 예술적, 문화적 의미에 대해 총체적으로 논술하려 한다.
   관념적 측면에서 보자면, 심업의 작품에서 뿜어 나오는 예술적 에너지는 오늘날 전지구적 차원의 정치, 경제, 문화적 충돌 및 그 근원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에서 비롯되고, 인류가 직면해 있는 생존 환경에 대한 우려와 현세계의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며, 약세에 처해 있는 이들의 패권에 대한 저항을 찬양하고 그들이 받고 있는 고난에 동정하고 연민을 느끼는 데서 비롯된다. 그의 작품에서, 미국 자유의 여신상, 달러와 미군병사의 이미지가 저항하고 몸부림치는 고뇌에 빠진 민초의 이미지와 뚜렷한 대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보건대, 심업이 작품에서 구축한 이러한 이원적 대립구조는 의심할 바 없이 오늘날 세계적 판도의 권력구조에서 강자와 약자가 양극으로 대립하고 있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 선명한 특징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이 현 세계에서 차지하는 패권적 지위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각은 한국 예술가로서 작가 자신이 자신의 조국에 아직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가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심업이 작품에서 구축한 미국의 패권적 이미지는 일종의 상징적 기호일 뿐이라는 것이다. 심업의 예술적 시각은 전지구적인 것이지, 좁은 민족주의나 본토적인 것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작품에서 미국의 패권주의적 이미지가 은유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사회형태로 취하는 공업문명이다. 때문에 심업이 관심을 쏟고 있는 중심 문제는 바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서양문명에 대한 고찰과 비판이다. 심업 작품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현재 우리 인류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보편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가 보건대, 심업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서양 공업문명에 대한 고찰과 비판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자본주의 공업문명의 논리 자체에 대한 비판이다. 막스 베버가 얘기하듯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가 결탁될 때 형성되는 자본충동은 결과적으로 이용 가능한 모든 자원과 조건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징후들은 예를 들어 자연 에너지와 광산의 개발, 그리고 국외 상품 시장의 개척, 후진국의 염가노동시장 개발 등에서 표출된다. 다른 한 편, 자본의 전지구적 유동을 방해하는 모든 비서방권의 국가나 인민들에 대해 자유, 민주,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무력정복과 식민통치 그리고 문화침투가 자행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심업의 작품에서 자유의 여신이 보여주고 있는 이미지이며, 총을 든 아이들에게서 이러한 폭력의 징후들이 역력히 포착된다. 심업이 보건대, 서양문명과 자본주의 제도는 기필코 폭력을 잉태하고 또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자본주의의 발전사는 바로 폭력이 난무하는 식민통치에서 문화 정복과 침투라는 후식민주의로 이어지는 변천의 역사다. 동시에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확장에 대해 비서방세계가 저항의 단계에서부터 그 문화를 받아들이고 또 그것에 동화되는 복잡한 변화의 과정을 겪은 역사이기도 하다. 냉전이 종식되면서 자본주의적 의식형태는 전세계적으로 이미 전면적 승리를 거두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새로운 충돌과 저항을 유발하였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하는 것처럼, 그것은 서로 다른 문명 사이의 충돌인 것이다. 특히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와의 충돌은 내전 후 다양한 형식으로 빈번히 나타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이 심업이 이번 전시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주제이며, 또한 우리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독립심업의 작품에서 빈번히 출현하는 기름통을 보면서, 우리는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패권과 저항이 의거하는 현실적 기초를 상상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냉전 후 발생한 두 차례의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코소보 전쟁, 9·11테러 등 이 모든 것들이 <창천> 시리즈의 관념의 근원이며, 또한 그가 예술을 통해 현대 세계의 문제를 사고하는 동력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 근본적 의미에서 볼 때, 심업은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공업문명이 의존하고 있는 문화와 가치관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필자가 생각건대, 이것은 공업혁명 이래 전체 인류세계가 직면한 곤경과 문제에 대한 심업의 심층적 사고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발전의 논리적 기초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런 욕망의 충동은 긍정적 측면에서 표현하자면 자연을 정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바람이고, 부정적 측면에서 보자면 끝없는 욕망이요, 탐욕과 점유욕이다. 세계의 다양한 문명은 인성의 이러한 본능과 욕구에 대해 다른 태도를 취하며, 또한 이로 인해 다른 문화관념과 가치체계를 형성하였다. 자연무위와 사회조화를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의 문화관념과는 달리, 서양은 중세 이후 개인을 중심으로 하고, 욕망을 가능한 한 만족시키도록 북돋우는 문화관념과 가치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가치체계가 20세기 이후 점차적으로 대다수 민족국가들이 받아들이고 추구하는 이상이 되었을 때, 결과적으로 심업이 <창천>에서 반영한 현실적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즉 자연에 대한 정복과 개발, 약탈이 초래한 생태위기, 그리고 이로 인해 야기된 상이한 민족 문화와 국가 간의 충돌과 전쟁 등이다.

 심업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비판을 예술작품에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총체적 상징체계와 사실적 서술성을 밀접히 결합하는 예술적 표현방법을 구사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고전 시대의 사실적 조각예술의 성과를 계승하는 한편, 또한 그것을 초월하여 작품이 현대적 성격을 띠도록 하였다. 이는 주로 심업 조각예술과 고전시대 조각예술 간의 두 가지 중요한 차이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첫째, 고전시대에는 조각의 소재가 종교에서 나왔건 역사 혹은 현실의 사건에서 나왔건 간에 모두 통치자의 의지를 대변했다. 예술작품의 의뢰자가 교황이거나, 국왕 혹은 귀족이었기 때문에, 예술가는 그들의 피동적 대변인이었으므로 자기 사상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반면, 심업의 예술은 완전히 개인의 독립적 사고의 표출이며, 그의 권력에 대한 비판과 인류의 곤경에 대한 고찰은 그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독립적 인격을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두 번째로 예술표현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고전적 조각의 사실성은 기념성이나 상징성에 종속되는 것으로, 이는 예술이 직접적으로 통치자의 의지를 위해 복무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와 달리, 심업의 조각예술에서 사실성은 서술성을 위해 존재한다. 그 목적은 자신의 문제의식을 더욱 명확하게 나타내기 위함이다. 밀폐된 전시공간일지라도, 상이한 의미를 대표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서로 관련된 의미의 고리들이 형성되며, 따라서 예술가의 관념과 사상은 이러한 서술적 의미고리 안에서 분명하고도 명확하게 표현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심업의 조각은 방법적 측면에서 서술성에 기초한 사실적 회화의 성격을 띠며, 전시공간의 배치라는 측면에서는 또한 현대 설치예술의 효과도 나타내고 있다.

 더 나아가, 사상과 관념의 차이는 고려하지 않고 시각예술의 효과라는 각도에서 심업의 <창천>을 본다면, 그것이 우리 나라의 유명한 조각작품 <소작원收租院>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일한 주제 안에서 서술적 방식으로 상이한 조각들을 조합하여 전체적 의미 연관을 형성하고, 또한 이 전체적 의미 연관을 통해 조각의 형상이 총체적 상징성으로 승화된다는 점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작품 <소작원>이 상징하는 것이 지주가 농민을 착취하는 봉건사회의 잔혹함이고 이는 반드시 타도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심업의 <창천>이 총체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현대세계의 갈등과 곤경이 바로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양의 패권주의와 그들의 문명에 기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심업이 작품을 통해 현대세계의 문제에 대해 사고하고 표현하면서 고전적 사실주의 예술을 초월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중요하게는 현대주의 미술의 형식적 자율과 자아표현의 예술원칙을 거절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이 그가 지식인으로서 인류의 운명과 처지에 대해 품고 있는 연민지심의 인문적 정서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심업의 <창천>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예술가의 영혼 깊이에서 울려 나오는 바로 이러한 인간성의 메아리 때문이다.